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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송서래와 홍산오, 그리고 고양이의 사랑

by 버즈개미 2022.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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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은 장해준과 송서래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그러나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해준과 송서래의 사랑 이야기 외에도 두 개의 이야기가 더 있다. 홍산오의 이야기와 고양이의 이야기다.
 

고양이의 등장

송서래와 홍산오를 연결 짓는 것은 매우 쉽다. 영화에서 나름 비중 있게 진행되기도 한다. 반면에 고양이는 영화에 단 한 장면에서만 등장한다. 장해준이 송서래의 집 앞에서 잠복수사를 하던 중, 송서래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준다. 길고양이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새 한 마리를 잡아 송서래에게 준다. 짧지만 중요한 장면이다. 그 이유는 영화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되는 물건 두 개가 이 장면에서 동시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1. 고양이가 잡아 온 새의 깃털
  2. 송서래가 새를 묻어줄 때 사용한 청록색 양동이

새의 깃털은 장해준이 가지게 되면서 송서래를 향한 장해준의 마음을 상징하게 된다. 장해준은 이 깃털을 중국어 공부하던 책의 책갈피로 사용한다. 또한 이포로 전출 갔을 때도 이 깃털을 들고 간다.
 
청록색 양동이는 더 특별하다. 고양이 장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이 양동이 때문이다. 청록색 양동이는 상황에 부자연스러운 소품이다. 보통 크기가 작은 새를 묻기 위해 땅을 판다고 생각하면, 손을 사용하거나, 집에 있는 자기 그릇을 가지고 올 것이다. 송서래는 청록색 양동이를 선택한다. 집에 저런 양동이를 가진 사람은 드물 것이고, 청록색 양동이는 더욱 드물다. 상징이 많은 영화에서 부자연스러운 물건이 등장했다는 것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 물건을 집어넣었다고 볼 여지가 많다. 부자연스러운 물건이 하나의 은유, 상징이 되거나 감독이 그 물건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 있는 것이다.
 
청록색 양동이가 중요한 이유는 영화의 결말에 송서래가 바닷가에 자신을 묻을 때 다시 한번 사용하기 때문이다. 새를 묻을 때와 자기 자신을 묻을 때 같은 양동이를 사용한 것이다. 그것도 본인을 상징하는 색깔인 청록색 양동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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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오에 대하여

세 이야기를 연결 짓기 전, 홍산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부산 경찰인 장해준은 살인범인 홍산오를 추적하지만 잡아내지 못한다. 홍산오를 잡는 단서를 찾은 사람은 송서래다. 홍산오가 죽기보다 싫어했던 감옥을 한 여자를 위해 갔다 온 것을 눈치챈 송서래는, 여자친구가 많았던 홍산오는 사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간파한다. 장해준은 이 사실을 바탕으로 홍산오를 찾는 데 성공하지만, 홍산오는 자살을 선택한다.
 
홍산오의 진심을 간파한 사람이 송서래인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 장해준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진실을 송서래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던 것일까? 둘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송서래는 영화에서 여러 명의 남편을 가졌지만,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장해준이다. 여자친구가 많았지만, 미용실에서 일하는 한 여자만을 사랑한 홍산오와 매우 유사하다. 홍산오와 같은 사랑을 해왔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송서래는 홍산오의 진심을 간파했던 것이다.
 
홍산오의 얼굴에는 한자 문신이 있다. 사람 인(人)과 두 이(二)다. 두 한자를 합치면 어질 인(仁)이다. 영화 내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바다를 좋아한다”는 대사가 있다. 산과 바다는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들이다. 홍산오는 그의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산과 같은 사람이다. 홍산오는 최후도 산에서 맞는다. 장해준이 홍산오를 쫓아 올라간 곳은 초록색 지붕이다. 홍산오는 그곳에서 떨어져 죽는다. 영화 내에서 산을 상징하는 또 다른 사람인 기도수는 자신이 평소에 등반하기 좋아하던 산에서 떨어져 숨을 거둔다. 둘의 죽음은 놀랍도록 닮았다.
 
송서래 또한 산을 상징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자신에게 상속된 산도 있다. 또한 장해준은 송서래에게 꼿꼿하다는 표현을 쓴다. 역시나 부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살면서 누구에게 꼿꼿하다고 평한 적이 있는가?
 

 

세 이야기의 공통점

송서래, 홍산오, 그리고 고양이의 이야기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의 과정에서 사람(생명)들이 죽는다. 송서래의 행적만 보면 연쇄살인마와 다를 것이 없다. 직접 죽인 사람으로는 송서래의 어머니, 전 남편 기도수, 철썩이의 어머니가 있으며, 마지막 남편 임호수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유발한다. 홍산오는 질곡동 살인사건의 범인이며, 자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 사랑한 여자가 바람을 피우자 그 남자를 죽인다. 고양이는 자신에게 밥을 주는 송서래에게 새 한 마리를 잡아서 선물한다. 세 이야기 모두 사랑의 주체가 사랑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다른 생명들이 죽는다.
 
송서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송서래는 죽은 새를 묻을 때와 바닷가에서 자기 자신을 묻을 때 같은 청록색 양동이를 사용한다. 죽은 새를 묻는 행동과 자신을 묻는 행동은 같은 의미에서 행했다는 뜻이며, 자신과 죽은 새를 동일시한다는 뜻이다.
 
장해준은 바다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홍산오의 이름에 산이 들어가듯 장해준의 이름에는 바다가 들어간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에서 직설적인 이름들을 여럿 사용한다. 산과 같은 송서래는 바닷가의 모래사장으로 걸어가, 청록색 양동이로 자신의 무덤을 판다. 모래사장에 구덩이를 파면, 파낸 모래만큼의 언덕이 옆에 생긴다. 파도가 점점 밀려오며, 모래언덕이 점점 무너져내리는 연출이 등장한다. 송서래를 상징하는 산이 파도에 의해 서서히 무너지면서, 송서래의 죽음을 시각화한 것이다. 송서래라는 산이 죽어서 바다에 묻힌 것이다. 장해준을 상징하는 그 바다 말이다.
 

송서래는 장해준이 자신을 평생 잊지 못하도록 자기 자신을 장해준의 가슴속에 묻은 것이다.

 
 
 
[영화 리뷰] - <헤어질 결심>에 대하여

<헤어질 결심>에 대하여

1. 영화에는 장해준과 송서래의 사랑 이야기 이외에도 다른 사랑 이야기가 두 개 있다. 하나는 홍산오의 사랑 이야기고, 하나는 고양이의 사랑 이야기다. 이 세 개의 사랑 이야기는 모두 연관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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