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에는 장해준과 송서래의 사랑 이야기 이외에도 다른 사랑 이야기가 두 개 있다. 하나는 홍산오의 사랑 이야기고, 하나는 고양이의 사랑 이야기다. 이 세 개의 사랑 이야기는 모두 연관되어 있으며 헤어질 결심을 관통하는 핵심이 된다.
2. 욕심이 많았던 영화다. 헤어질 결심은 로맨스이면서 동시에 범죄 추리극이고 느와르다. 영화는 상징으로 뒤덮여있고, 대사 또한 복선이 되면서 영화를 정교하게 묶어준다. 그러나 욕심이 과했던 탓에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이는 이후 서술하겠다.
3. 장해준이 사는 이포는 안개로 가득 찬 도시다. 안개는 사람의 시야를 흐린다. 진실을 숨기며 명확한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안개를 사용한 대표적인 이야기인 사일런트 힐을 생각하면 된다. 사일런트 힐은 비밀이 있는 마을이었다. 대사에도 직접적인 언급이 있다. 불면증으로 병원을 찾은 해준과 정안은 의사에게 이 마을은 해가 없다고 말한다. 해는 보통 진실, 광명을 뜻한다.
4. 청록색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송서래의 청록색 옷은 빛에 따라 초록색으로 보이기도, 청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명확하지 않은 색깔은 흐릿한 안개와도 연결되며, 청록색은 송서래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초록색 산과 청색 바다, 그 사이에 있는 색깔이다. 청록색은 송서래의 옷으로 등장하고, 스스로를 묻을 때 사용한 양동이의 색깔이기도 하다.
5. 홍산오의 이야기는 송서래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홍산오는 여자친구가 많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그중 한 명뿐이다. 자신이 죽기보다 싫어했던 감옥을 갔다 온 것도 사랑 때문이었다. 이를 처음으로 눈치챈 사람이 송서래인 것도 의도된 것이다. 홍산오는 송서래와 비슷한 사람이었기에 송서래만이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송서래 또한 여러 남편이 있었지만,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장해준이다. 둘의 최후가 자살이었다는 점 또한 공통점이다. 송서래는 바닷가에서 죽었고, 홍산오는 바다를 상징하는 장해준 앞에서 죽었다.
6. 세 번째 이야기는 고양이의 사랑 이야기다. 영화에서 매우 짧은 장면으로 지나가는데,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물건 두 개가 동시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바로 죽은 까치의 깃털과 청록색 양동이다. 고양이는 자신에게 밥을 주는 송서래에게 사랑의 보답으로 까치를 잡아서 선물한다. 세 이야기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다른 생명이 죽는다. 송서래와 홍산오, 고양이는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다.
7. 까치의 깃털은 장해준의 송서래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며, 영화 내내 등장한다. 장해준이 송서래와 소통하기 위해 공부한 중국어 책의 책갈피로 사용되며, 이포로 전출을 가서도 깃털을 가지고 간다. 청록색 양동이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 중 하나다. 이 양동이는 송서래가 고양이가 잡아 온 까치를 묻어줄 때 처음 사용했으며, 해변가에 자기 자신을 묻을 때 다시 사용한다. 까치를 묻는 행동과 자신을 묻는 행동이 같은 의도를 가진 행동이라는 뜻이다. 송서래는 스스로 까치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마침내 장해준의 심장(마음)을 얻는다.
8. 송서래와 고양이를 연관시키는 설정들은 생각보다 많다. 송서래의 허벅지에는 마치 동물이 긁은 듯한 할퀸 자국이 있다. 그녀의 외할아버지의 별명은 남만주의 살쾡이다. 송서래는 밥을 잘 먹지 않는다. 끼니를 아이스크림으로 해결한다. 첫 남편인 기도수는 자신의 이름을 송서래에게 새긴다. 자신의 이니셜을 부인에게 새기는 비상식적인 설정은 영화의 전개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은 왜 이런 과한 설정을 추가한 것일까? 반려묘에게 주인의 이름표를 단 것이다. 장해준이 송서래에게 처음 대접한 음식이 초밥이었다. “왜 초밥을 사줬을까?”라는 오수완의 질문은 관객을 향한 것이다.
9. 첫 번째 남편인 기도수는 영화에서 가장 확실한 캐릭터다. 고지식하고 고집이 강한 산 같은 사람이다. 취미도 등산이며, 최후를 산에서 맞는다. 홍산오도 산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홍산오의 얼굴에는 문신이 있다. 사람 인(人)과 두 이(二). 두 한자를 합치면 어질 인(仁)이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바다를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홍산오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홍산오가 장해준에게 쫓겨 올라간 건물의 옥상은 초록색이다. 홍산오 역시 최후를 산에서 맞은 것이다.
10. 헤어질 결심에서 송서래는 매우 독특한 자살방식을 사용한다. 해변가에 자신의 무덤을 파고, 밀려오는 파도에 잠식당하는 방식이다. 이때 무덤을 파면서 만들어진 모래 언덕이 파도에 의해 점점 무너져 내리는 연출을 보여준다. 서래는 자신의 산이 있다. 청록색처럼 서래는 산이면서 바다인 사람일 수 있지만, 산으로 비유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무너저내리는 모래 언덕은 서래의 죽음을 은유한다.
11. 철썩이라는 독특한 별명이 등장한다. 손이 매워서 철썩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우리가 ‘철썩’이라는 표현을 뺨 때리는 데 가장 많이 쓰지는 않는다. 파도 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로 가장 흔히 사용된다. 송서래가 죽인 사람들 중, 죽음을 부탁했던 서래의 어머니를 제외한다먼, 죄 없이 죽은 사람은 철썩이의 어머니뿐이다. 원래는 당뇨로 인한 죽음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두 번째 남편인 임호신이 녹음 파일의 존재를 알아버리는 바람에 계획이 앞당겨지며 살인을 저지른다. 철썩이는 파도에 의한 죽음은 철썩이의 어머니를 죽인 죗값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12. 장해준의 부인인 이정안은 원전에서 안전관리자로 일한다. 이런 설정들은 정안의 캐릭터를 잘 표현한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정안이 추구하는 관계는 사랑이 아닌 안정이다. 안정적인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의무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원전 완전 안전이라는 농담도 등장한다. 원전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을 하는 정안은 해준과의 부부관계도 안전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원전이 실수 한 번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원전은 해준과 정안의 부부 사이를 상징한다. 서래가 이포로 와서 얻은 직업이 원전의 위험성을 이용한 관광이라는 점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13. 탕웨이를 위한 각본이었다. 중국어를 사용한다는 설정도 그렇고, 위험하지만 매혹적인 송서래를 탕웨이 이상으로 연기해낼 배우가 생각나지 않는다. 탕웨이만의 매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작품이라 생각한다.
14. 김신영은 아쉬웠다. 헤어질 결심은 개그 요소들이 여럿 있었지만, 코미디 영화는 아니다. 박해일의 파트너로 부산에서는 고경표, 이포에서는 김신영이 등장한다. 김신영의 연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그우먼으로 익숙한 탓에 연기가 아닌 콩트를 하는 듯 보이는 장면들이 많다. 진중한 영화에서 진중하지 못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는 몰입감에 치명적이다. 많은 상징들을 가진 정교한 영화를 만들어낸 박찬욱 감독이 왜 김신영을 출연시키는 리스크를 감수했는지 의문이다.
15. 영화는 배우도 중요하고, 상징과 은유, 미장센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영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야기의 완성도가 부족하다면 다른 부분이 뛰어나다고 한들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렵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이야기의 전개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존재한다. 장해준은 월요일 할머니의 휴대폰에서 오른 층계 앱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사건의 진범이 송서래였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할머니의 핸드폰이 느려졌고, 백그라운드 앱들을 지워주는 과정에서 오른 층계 앱에서 138이라는 숫자를 발견한다. 이를 보고 송서래와 같은 등산코스로 산을 오르니 정확히 138이라는 숫자가 똑같이 나온다. 이 전개는 매우 부자연스럽다. 오른 층계 앱을 우연히 발견한 것은 넘어가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보폭과 걸음걸이로 걷는데, 138이라는 똑 같은 숫자가 나온 것은 작위적인 연출이다. 또한 할머니와 자신의 휴대폰이 같은 기종인 것을 이용해 바꿔 치고, 기도수와 다른 등산로를 계획할 정도로 치밀한 송서래가 오른 층계 앱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 쉽게 간과했을까? 할머니의 휴대폰에 안개라는 노래를 넣어준 사람도 송서래다. 사실상 할머니의 휴대폰을 관리했던 사람이 오른 층계 앱의 존재를 몰랐다는 전개는 매끄럽지 못하다.
더 자세한 리뷰는 아래 글에 적어놓았습니다.
[영화 리뷰] - 송서래와 홍산오, 그리고 고양이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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